(항해기) 태평양을 넘은 50일의 기록 - 02

두 번째 이야기, 뉴질랜드 입국과 첫날의 여정


태평양을 넘은 50일의 기록-02

요트 항해사 - 최 성 진(崔成鎭)

뉴질랜드 입국과 첫날의 여정
결국 과징금 300만 원 ! )



■ 2018년 10월 18일(목) (뉴질랜드 오클랜드(+4시간) 공항 오후 2시 도착=체류 1일)


뉴질랜드는 한국보다 3시간 빠르지만, 썸머타임이 적용되는 9월 마지막 일요일부터 4월 첫 번째 일요일까지는 시차가 4시간이 된다. 이 기간에는 현지의 시간에서 4시간을 더해야 한국의 시간이 된다.


▲ 도착 전 항공기에서 내려다본 뉴질랜드

입국 심사대를 통과해 수화물을 찾으러 가는 길에 검은색 탐지견 한 마리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개를 데리고 있던 직원이 나를 검역관에게 인계했고, 나는 짐과 소지품을 모두 들고 검역사무실로 이동했다.
알고 보니 회장님이 요트 대금을 준비하며 뉴질랜드 1만 달러 신고 기준을 미국 달러로 착각해, 각자에게 뉴질랜드 달러로 환산한 약 1만 3천 달러씩 나눠줬던 게 문제가 되었다. 다른 일행은 무사히 통과했지만, 내가 지닌 현금이 개의 후각에 걸린 것이다.


▲ 드디어 도착한 뉴질랜드

걱정된 김정대님이 따라오셨고, 검역관이 일행이냐고 묻더니 우리 모두를 사무실로 데려갔다. 중간 직급의 남성 검역관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지만, 인도계 여성 검역관은 무척 권위적이고 불친절했다.
우리는 돈의 출처와 목적을 설명했다. 남성 검역관은 원칙대로라면 압수 대상이지만 솔직하게 소지한 돈을 모두 보여준다면 몸수색은 하지 않고 돈도 압수하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는 한국 돈까지 포함해 전액을 꺼내 놓았고, 검역관은 모두 확인한 후 요트 비용 외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압수 없이 넘어갔다.


▲ 입국 심사의 어려움 - 돈, 담배 그리고 마른 북어 까지...

그런데 문제는 담배였다. 한국 출발 전 면세점에서 4보루씩 구매했던 담배가 문제가 되었다.
뉴질랜드는 담배 반입량이 52개 피 혹은 잎담배 50g 이하로 제한되는데, 우리는 이를 훨씬 초과했다.
한 개 피 당 과징금을 약 1천 원씩 내고 가져가든지, 아니면 담배를 몰수하고 과징금을 내던지, 담배를 몰수하고 감치 후 법원에 항고하라는 세 가지 선택지를 제시받았다.
결국 약 300만 원의 과징금을 내고 담배를 가져가는 쪽으로 결정했다.

더군다나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검역소 직원이 항해 중 먹으려던 마른 북어를 문제 삼으며 신고하지 않은 식품이라고 추가 과징금을 요구했다. 이에 우리는 담배 문제로 이미 과징금을 냈다고 항의했고, 검역 책임자가 이를 받아들여 더 이상의 불이익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검역소를 나서려 하는데 책임자가 우리는 모두 검역 대상자 리스트에 등록되었으니 앞으로 뉴질랜드 입국 시 일반 검역 통로가 아닌 별도 검역실에서 하나하나 짐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후 과징금 납부소로 이동해 모든 절차를 마치고 오후 6시가 되어서야 공항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나오자마자 흡연 구역을 찾았지만 뉴질랜드는 흡연에 관대한 편이라 공항 앞 보도를 건너 아무 데서나 피울 수 있었다. 오랜만에 피운 담배는 어지러웠지만 비싼 담배라 그런지 맛은 더 좋았다.

이후 회장님이 사전에 예약해 두었던 렌터카 업체에 연락하니, 너무 늦게 도착한 탓에 직원이 공항으로 오지 못한다고 했다. 대신 공항 셔틀버스를 타고 가까운 사무소로 오라는 안내를 받고, 우리는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 밤 늦게 도착한 렌터카 사무실 

렌터카 사무소에 도착해 서류를 작성하고 SUV 한 대를 배정받았지만, 성인 다섯 명에 개인 짐과 공동 짐까지 더하니 짐이 상당했다. (개인당 12kg+23kg+공동짐 23kg) 결국 차량 지붕 위에 짐을 얹고 고정하려 했으나 너무 위험해 보여 결국 짐을 안거나 다리 사이에 끼운 채 좁은 공간에 앉아 이동해야 했다.
뉴질랜드는 운전 방향이 우리와 반대라 익숙하지 않고, 더군다나 밤이라 힘들었지만 김정대님이 운전을 맡아 오클랜드에서 황가레이 그리고 숙소가 있는 파이히아까지 약 4시간을 달렸다.

밤늦은 시간에 허기가 져 24시간 햄버거 가게에 들렀지만 이미 영업이 끝났고 근처 편의점도 문을 잠근 채 외부에서 주문을 받아 판매하고 있었다. 점원이 샌드위치와 빵 그리고 커피를 서랍 형태의 전달함으로 건네줬는데 우리가 손을 빠르게 움직이자 깜짝 놀라 손을 피하는 모습에서 이곳의 경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도 범죄가 많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일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숙소에 전화하니 우리가 늦게까지 연락이 없어 예약한 방은 다른 투숙객에게 넘어갔고, 내일만 방이 있다고 했다.

마땅한 대안이 없어 근처 마트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했고, 김정대님은 한국의 가족과 통화를 했다.


▲ 잠시 후 만나게 될 M1 요트


파이히아로 가는 길에 회장님이 요트를 구경하자고 하여 오푸아 마리나에 들렀다. 그러나 밤이 깊어 요트의 정확한 위치를 몰라 마리나 전체를 돌아다녀야 했다.


마리나는 제법 컸고 많은 요트가 정박되어 있었다. 마리나 주위로 배를 수리하는 공장이 여러 곳 있었다. 바람이 쌀쌀한 새벽 공기 속에 한참을 헤맨 끝에 결국 요트를 찾을 수 있었다.


▲ 늦은 밤 요트를 보기 위해 마리나로 이동


요트를 둘러보고 다시 차량으로 돌아와 추위를 피해 옷을 껴입고 어디 갈 곳도 없고 해서 차 옆에서 가져온 술과 파김치를 안주 삼아 요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후 파이히아로 이동해 상점이 모여 있는 지역에 도착했다. 막상 도착해 보니 관광 휴양도시라고 생각하기엔 뭔가 부족한 작은 마을이었다.

새벽녘, 할 수 있는 일도 마땅치 않아 결국 예약했던 숙소 마당에 도착해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잠을 청하며 긴 하루를 마무리했다.


< 다음 편 : ‘M1’과 첫 대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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