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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을 넘은 50일의 기록-07
■ 10월 23일 (화요일) 맑음 — 체류 6일차
오전 3시 30분(현지 시각 7시 30분)에 기상해 라면으로 간단히 식사를 했다. 전날 크레이그 씨와의 계약 중 중도금 송금 문제를 두고 회장님이 고심하는 모습이었는데, 그때 김정대님이 “게스트하우스 아래 삼거리의 잡화점에서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을 봤다”며, “그곳을 운영하는 이들이 한국인 같다”고 말했다. 회장님은 “그럼 잘됐다. 모두 잡화점에 가서 물건을 사는 척 하다가 한국 사람을 만나 반갑다고 하며 도움을 받자”고 하셨다.
오전 5시 30분, 우리는 모두 잡화점에 들어갔다. 일행 중 한 분이 선글라스를 고르고, 우리는 한국말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물건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때 사장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분이 상품에 대해 한국말로 설명을 시작하자,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회장님이 “혹시 한국분이세요?”라고 물으셨다.
사장님이 그렇다고 답하자 회장님은 “이런 곳에서 한국분을 만나 정말 반갑다”며, 한국에서 어디에 살았는지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은행 문제에 대해 물어보자, 사장님은 친절하게 현지 은행 시스템과 송금 방식에 대해 알려주셨다.
오전 7시 30분, 현지 은행은 우리나라처럼 전산이 통합되어 있지 않아서 서로 다른 은행 간 송금이 어렵고, 같은 은행 간 송금만 가능하다고 했다. 또 6만 5천 달러를 송금하려면 수수료만 해도 약 500달러가 든다고 했다. 이에 선주 크레이그 씨의 주거래 은행에서 직접 송금하기위해 그의 주거래 은행과 공장이 있는 케리케리(Kerikeri)로 회장님과 두명의 회원이 출발했다.


이어 크레이그 씨 공장에 들러 선대 크기를 확인하고, 세계 지도가 내장되어 있는 해상 GPS 플로터도 점검했다. GPS는 직접 가지고 오고, 토요일 협상하며 받기로 한 낡은 연장과 선대는 크레이그 씨가 후일 가져다주기로 했다고 했다.

게스트하우스 주차장에 자리가 없어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들어왔는데, 주인이 와서 우리가 탄 렌터카 타이어를 가리키며 “여기다 차를 세우면 벌금을 내야 한다”고 경고했다. 타이어를 보니 페인트로 두 줄이 그어져 있었는데, 한 줄은 경고, 두 줄은 실제 벌금을 의미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여기에 온 뒤로 경찰이나 주차단속요원을 본 적이 없었는데, 이곳처럼 한적한 마을도 주차 단속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의외였다.

선착장 호프집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수상 레스토랑에도 손님이 많아 바쁜 분위기였다. 레저용 배와 수송용 선박들도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며 시간을 보냈지만, 제대로 된 미끼가 없다 보니 입질 한 번 받지 못한 채 줄만 감았다 풀기를 반복했다.

어느덧 날이 어두워져 낚시를 접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저녁 8시경, 다른 이들이 모두 잠든 후 여유롭게 샤워를 하러 갔다. 샤워를 마치고 좁은 복도로 나오는데, 속옷 같은 반바지만 입은 백인 청년 넷이 만취한 채 복도에 엉켜 누워 있었다. 이들은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떠들었고, 나는 기분이 나빴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아 그 사이를 비집고 방으로 들어왔다.
며칠 이곳에 머무르며 느낀 점이 있다면, 뉴질랜드 원주민이나 여성들은 대체로 친절했지만, 백인 남성들 중 일부는 은연중에 백인 우월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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