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기) 태평양을 넘은 50일의 기록 - 05

다섯 번째 이야기, 갈 곳도, 잘 곳도 마땅치

<이전 글 보기 : ‘M1’ 장비 및 조건에 대한 협상의 진행>



태평양을 넘은 50일의 기록-04

요트 항해사 - 최 성 진(崔成鎭)

갈 곳도, 잘 곳도 마땅치

(우리는 TV 앞에 매트 네 장을 펼치고 잠자리를 만들었다)




■ 10월 21일 (일요일) 맑음 — 체류 4일차

오전 3시 30분(현지시간 7시 30분) 잠에서 깨어 숙소의 공동식당에서 간단한 식사를 한 뒤, 세일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딜러에게 연락했다. 요트를 보러 오푸아 마리나에 가겠다는 의사를 미리 전한 것이다.


▲ 게스트하우스 공동식당

오전 6시, 마리나에 도착했으나 계류장 출입문이 잠겨 있었다. 딜러에게 다시 전화를 걸자, 그는 마리나 사무실에 직접 연락해 비밀번호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요트 이름을 말하고 출입 비밀번호를 받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 오푸아 마리나 모습

우리는 요트에 승선해 *윈치(Winch), **헬리어드(Halyard), ***시트(Sheet) 등의 상태를 살펴보고, 선실 내부로 들어가 엔진, 오토파일럿, 화장실 등 주요 장비를 하나씩 점검했다. 항해 전 필요한 수리 사항을 기록하기 위함이었다.



점검을 마친 후 숙소로 돌아왔는데, 우리가 자던 방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예약이 되어 있었고, 게스트하우스 전체에 빈방이 없는 상황이었다. 회장님은 "어차피 빈방도 없으니 요트로 들어가서 자자"고 제안했지만, 다른 회원들이 “아직 요트값을 완납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반대했다.


▲ M1 요트를 점검하는 회원들
실제로 요트의 소유권은 아직 크레이그 씨에게 있고, 요트에서 자다가 사고라도 발생하면 책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회장님은 딜러인 그렘 씨에게 연락을 해 크레이그 씨에게 승낙을 받아달라고 요청했지만, 결국 크레이그 씨는 단호히 거절했다.

하는 수 없이 요트에서 자는 계획은 포기하고,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다음 날 방이 있는지를 물었다. 다행히 다음 이틀은 예약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고 방을 다시 예약한 후, 짐은 2층 안내실에 맡겨두고 숙소를 나섰다.

오전 10시 40분(현지시각 14시 40분), 회장님이 크레이그 씨의 공장이 있는 케리케리(Kerikeri)에 가보자고 제안하셨다. 장도 보고 필요한 공구들도 둘러보자는 말씀이셨다.

케리케리에 도착한 우리는 입구에 있는 피자 가게에서 피자와 콜라로 점심을 해결하고 마트에 들어갔다. 저녁에 먹을 고기를 조금 사서 나오니, 주차장에 멋진 오토바이들이 여럿 들어오고 있었다. 이곳 주차장은 구획선이 두 줄로 그려 있어 주차 간격이 넓은 점이 좋아보였다.


▲ 마트 앞에서 
마트를 나온 뒤, 인근 상점에서 주방용품을 구매했고, 박종보님은 양털 이불을 하나 샀다. 항해 중 이 이불이 추운 밤 무척 유용해 보여 탁월한 선택을 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한국을 떠나기 전 회장님이 "침낭은 얇은 거 하나면 된다"고 했지만 실제 항해 중엔 추운 날이 꽤 많았다. 공구점을 들러본 뒤, 인근에 있던 분수대 앞에서 기념사진도 남겼다.

▲ 케리케리에 있는 조형물 분수대
케리케리에서 볼일을 마친 후, 우리는 파이히아 근처의 해변으로 갔다. 그런데 문제는 여전히 갈 곳도, 잘 곳도 마땅치 않았다는 것이었다. 회장님은 "오늘은 이 해변 벤치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여기서 밤을 보내자"고 하셨다. 그러나 날씨는 제법 쌀쌀했고, 이곳이 공공 해변인 만큼 야외 취사는 불법일 수도 있어 걱정이 앞섰다.

▲ 파이히아 해변
일행 중 한 분이 해변 뒤편 산 아래에 캠핑장이 있는 것을 보고, 그곳을 알아보자고 했다. 함께 들어가 이용 요금을 문의했는데, 회장님은 “게스트하우스가 하루 10만 원인데 여긴 그보다 비싸다”며 바로 발길을 돌렸다.

결국 다시 해변으로 돌아온 회장님은 “게스트하우스에 가서 고기를 구워 저녁을 해결하고, 밤에는 차에서 자자”는 것이었다. 김정대님은 “그래도 주인에게 말은 해야지, 허락도 없이 식사를 해도 되겠냐”고 했지만, 회장님은 “짐도 맡겨놨고 내일 방도 예약했으니 괜찮다”며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 게스트 하우스 모습
오후 3시(현지 오후 7시), 우리는 다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김정대님은 기분이 상했는지 식재료를 내리고 차를 외곽 도로에 주차한 뒤 차 뒷좌석에 누워 내리지 않았다. 나머지 일행은 식사 준비를 시작했는데 주인이 험악한 표정으로 나타나 큰 소리로 항의하기 시작했다. 회원 한 분이 “빈방이 없어 잠은 밖에서 자고, 식사만 하고 나가겠다”고 설명했지만, 주인은 안내실로 우리를 데려가 주변에 방이 많다는 것을 컴퓨터로 보여주었다. 할 말이 없었다. 결국 15뉴질랜드달러(한화 약 6만 2천원, 5인 방값이 10만원이었는데 휴게실 이용료가 헐~~~)를 지불하고 식사는 물론 2층 휴게실에서 잠을 자도 된다는 조건에 합의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와인과 함께 돼지고기와 양고기를 구워 편안한 식사를 나누었다. 식사를 마친 후, 각자 준비해온 침낭을 들고 2층 휴게실로 올라갔다. 별도의 공간이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방과 연결된 복도와 같은 구조였다. 휴게실엔 작은 1인용 매트가 네 개 놓여 있었고, 젊은 남성이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 중이었다. 그가 방으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우리는 TV 앞에 매트 네 장을 펼치고 잠자리를 만들었다. 나는 소파에 누워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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