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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27일(토요일) 날씨 오락가락 — 체류 10일차 / 요트 4일차
요트 위의 일상과 작은 해프닝 – 작살 사냥과 마리나의 규칙
오전 2시 30분(현지 시간 6시 30분), 기상하여 추위를 달래기 위해 네오플랜 방풍 자켓을 입고 계류장 끝에 앉아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참선과 깊은 호흡을 했다.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 뉴질랜드의 해돋이와 함께 나의 몸을 천천히 충전시켰다.
4시부터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5시에 비는 그쳤다. 이후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었으나 바람은 여전히 차고 세차게 불었다.
요트 캐빈 중앙 바닥에 비스듬히 누워 잠을 자던 일행 중 한 분이 항해가 시작해도 계속해서 이 자리에서 자야 하느냐고 걱정스레 물어왔다. 선미 쪽 침상은 좁고, 앞 침상에 이미 누워 있는 사람을 넘어가야 하는 구조여서 불편함을 호소했다. 나는 항해 중에는 교대로 근무를 하게 되어 자리가 비는 시간이 생기므로 상황에 맞게 교체하며 쓸 수 있을 거라고 설명했고 그제야 그 회원도 조금 안심한 듯 보였다.

하지만 곧 선장님께서 단호하게 각자 정해진 자리 외에는 사용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피곤한 상태에서 자신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제대로 쉴 수 없다는 이유였다. 배에서는 선장의 말이 곧 법이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이건 좀 아닌데…'라는 마음이 조용히 일렁였다.

오전 6시 40분, 크레이그 씨와 전기 기술자가 요트를 방문했다. 전기 배선 설계 도면을 바탕으로 엔진과 배선을 하나하나 점검했지만, 주말이라 필요한 부품을 구할 수 없어 월요일에 다시 오겠다며 오전 10시경 돌아갔다.

오전 11시 30분, 러셀로 여행을 간 회원을 제외한 네 명은 작살을 추가로 하나 더 구매해 돔 사냥에 나섰다. 물고기를 잡는데 왜 낚시가 아니고 사냥이냐고 묻는다면... 낚시는 낚싯대, 낚싯줄, 미끼를 사용해 꼬시는 방식이고, 작살질은 물고기를 직접 타격함으로 포획하는 방식이므로 ‘낚시’보다는 ‘사냥’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어제는 우리 요트가 정박한 계류장에서만 사냥했지만, 마리나의 모든 시설 비밀번호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처음 칸부터 마지막 칸까지 전부 돌아다니며 사냥을 이어갔다. 사냥을 위해 다른 계류장으로 들어보니 차양까지 친 멋진 요트들이 있었다.

작살 두 개로 아홉 마리의 돔을 잡았는데 돔 크기가 제법 있다보니 비닐 팩이 무거울 정도였다. 잡은 고기는 계류장 데크 모서리의 나무판자를 하나 떼어내 도마 삼아 손질하고 회를 뜬 뒤 선대 위에 널었다. 생선 내장과 지느러미 같은 부스러기는 갈매기들의 먹이가 되었는데, 커다란 덩치의 알바트로스가 나타나자 작은 갈매기들은 물러나고 알바트로스는 여유롭게 가장 큰 조각을 물고 날아갔다.

그러던 중 마리나의 젊은 여자 직원이 다가와 영어로 무언가를 말했는데, 대화가 통하지 않아 정확히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물고기 사냥은 안 된다는 말 같았다. 그녀는 귀여운 표정과 몸짓으로 설명했고, 이후에도 마주칠 때마다 유쾌하게 인사하며 같은 몸짓을 반복했다.

어제 우리 요트가 정박해 있는 계류장에서 작살질 했을 때는 주변 요트에서 재미있다는 듯 지켜보았는데, 오늘 범위를 넓혀 마리나 전체를 돌아다니며 작살질을 하니 누군가가 신고를 한 것 같았다.
저녁 무렵, 러셀에 다녀온 회원이 돌아왔고, 박종보님은 회와 함께 어제 말려둔 생선으로 맛있는 조림 요리를 준비했다.

우리가 회를 먹는 중, 어제 입항한 영국 요트 부부가 보여 함께 하자고 했지만 남자분은 정중히 거절했다. 회를 못 먹느냐고 묻자, 회는 먹지만 마리나 수질이 좋지 않아 여기서 잡은 생선은 먹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가 보기엔 마리나 수질이 좋아 보였는데, 영국 사람의 기준은 다른 것 같았다.
이 부부는 영국에서 패션사업으로 성공한 뒤 은퇴해 뉴질랜드 작은 섬을 하나 사서 요트 크루징(Yacht Cruising)을 하며 여유롭게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참말이지… 부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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