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기) 태평양을 넘은 50일의 기록 - 08

- 드디어 요트에서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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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을 넘은 50일의 기록-08

요트 항해사 - 최 성 진(崔成鎭)

드디어 요트에서 생활
(뉴칼레도니아까지 대략 경유 20리터짜리 10통...)


■ 10월 24일 (수요일) 맑음 — 체류 7일차 / 요트 승선 1일차


오전 3시(현지 시각 7시)에 일어나 게스트하우스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오전 4시 30분, 딜러 그렘 씨로부터 한국에서 요트 잔금이 입금되었다는 확인 전화를 받았다. 회장님은 “이제 출항 준비를 해야겠다”며 모두 짐을 챙겨 배로 이동하자고 하셨다. 우리는 서둘러 짐을 싸서, 게스트하우스 창문을 통해 하나하나 밖으로 짐을 옮겼다.


▲ 게스트하우스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이지만 지친 모습

오전 6시 30분, 오푸아 마리나에 도착했다. 잠겨 있던 열쇠를 풀고 캐빈(선실) 문을 열어, 차량에 실려 있던 식료품과 개인 짐들을 요트 안으로 정리했다. 아직은 어수선했지만, 드디어 요트에서 생활이 시작된다는 실감이 조금씩 밀려왔다. 


▲ 오푸아 마리나 모습 

요트를 정리한 후, 회장님과 회원들은 항해에 필요한 식수와 경유통을 사기 위해 마트로 출발했다. 항해 시 대략 6노트 속도로 하루에 135해리(250Km)를 간다고 가정하면 경유 20리터짜리 1일 1통이 들어가므로, 1구간인 뉴질랜드에서 뉴칼레도니아까지의 거리 1,290해리는 대략 경유 사용 예상량이 20리터짜리 10통으로 계산이 나온다. (1,290해리÷135해리=9.5통) 회장님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10통을 추가로 준비하자고 하셨고, 다른 일행은 “사고나 조난 시에는 식수가 제일 중요하다”며 물도 넉넉히 준비하자고 의견을 냈다.



▲ 정박된 요트에서의 정리 모습

오전 10시, 일행이 마트에서 돌아왔다. 회장님은 물통이 경유통보다 저렴하다는 이유로 10L짜리 식수통 10개를 구입해와 물을 비우고 그 통에 경유를 넣어야 했다. 하지만 물통 마개가 경유용으로 적절치 않아 기름이 새어나왔고, 결국 10개 중 5개만 실제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20L 경유통 11개와 10L 식수통 5개, 합계 270L의 경유를 준비하게 되었다.


▲ 생선을 나눠주고 회를 뜨는 호주 출신 영감님(1)
오후 6시경, 뉴질랜드에서의 처음으로 회를 맛보게 되었다. 마리나에 후덕하게 생긴 호주 출신 영감님이 요트를 타고 일행들과 함께 낚시를 다녀오셨는데, 큼직한 생선을 제법 많이 잡아 왔다. 우리가 인사를 거네며 물고기에 관심을 보이자 흔쾌히 회감용 생선을 나눠 주었고, 직접 회 뜨는 방법까지 친절히 보여주었다.


▲생선을 나눠주고 회를 뜨는 호주 출신 영감님(2)
영감님은 호주에 집이 있고, 뉴질랜드에는 별장과 요트를 두고 종종 여가를 즐기러 온다고 했다. 내가 꿈꾸는 삶을 살고 있는 영감님이었다. 우리는 감사한 마음으로 받은 생선으로 회를 떠, 요트의 콕핏에 둘러앉아 준비한 와인과 함께 조용한 만찬을 즐기고 각자의 침상으로 들어갔다.


이날은 요트 M1에서의 첫 밤이었다. M1은 본래 레이싱 요트여서, 일반적인 크루저 요트와는 구조 자체가 달랐다. 선실 중앙에는 매트가 깔린 좌우 침상이 있어 비교적 편했지만, 선미 쪽은 야전침대처럼 생긴 침상이 시트(줄)에 매달려 있었고, 맨 끝 선미쪽 침상은 엎드려 기어들어가야 할 정도로 낮고 좁았다. 고개도 들 수 없고, 몸을 돌리는 것조차 힘들어 마치 관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 요트에서의 첫날 밤
이런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일행 중 한 분은 선미 끝 침상에서 버티지 못하고, 이후 항해 도중 선실 중앙 조리대 앞 바닥에서 잠을 청하셨다. 사실 우리 모두 바다 생활의 불편함은 각오했지만, 직접 겪어보니 그 현실은 꽤 녹록치 않았다.
게다가 게스트하우스에서 샌드플라이에게 많이 물린 다리는 이미 퉁퉁 부어 있었고 많이 가려웠는데, 이날 캐빈 안에서도 샌드플라이들이 계속 날아다녀 잠자리조차 평온하지 못했다. 이렇게 요트에서의 첫날밤이 지나갔다. 설렘과 고단함, 그리고 불편함이 뒤섞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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