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기) 태평양을 넘은 50일의 기록 -14

- 마리나에 묶인 13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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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을 넘은 50일의 기록 –14

요트 항해사 - 최 성 진(崔成鎭)

마리나에 묶인 13일 차
(나라 망신을 시켰다는 생각에 너무 민망하고 창피)



■ 10월 30일(화) 해 뜨고 비 오고 반복 = 체류 13일 차 (요트 생활 7일)

샌드플라이와의 전쟁, 그리고 뜻밖의 갈등 – 마리나에 묶인 13일 차

오전 3시 10분(현지 시간 7시 10분) 기상. 흐린 하늘 아래 해가 떴다가 비가 내리기를 반복하던 중 동쪽 하늘에 크고 선명한 무지개가 떠올랐다.


▲ 마리나에 비친 무지개 

전날 저녁, 일행 중 한 분이 옆 요트 쪽으로 소변을 보다가 해당 요트 주인의 강한 항의를 받는 일이 있었다. 이 사실이 마리나 사무실에 전해졌는지, 오전 6시 30분 마리나 관리인이 찾아와 누구였는지를 물으며, 반드시 외부 건물 화장실을 이용해 달라고 주의를 주고 돌아갔다. 우리는 나라 망신을 시켰다는 생각에 너무 민망하고 창피했다.


▲ 휠 앞에 설치한 해상 GPS


▲ 수리한 요트에 있는 고물 라디오 
오전 7시 15분, 김정대 님이 크레이그 씨에게 받은 해상 GPS를 휠(Wheel, 자동차 핸들과 같은 기능) 앞에 설치했다. 이어 고장 난 라디오를 수리해 콕핏(Cockpit) 옆 스피커로 현지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했고, 항해 중 다른 선박이 우리 요트를 인식하도록 레이더 반사봉도 정비했다.


▲ 레이더 반사봉을 달기 위한 작업

▲ 스프레더 사이에 달린 레이저 반사봉

오전 9시, 박종보 님이 준비한 아침을 먹고 계류장 수도에서 설거지를 하던 중, 요트 안에서 선장님과 한 회원 간에 큰 언쟁이 벌어졌다. 그 회원은 “이 방식으로는 더 이상 항해할 수 없다”며 짐을 싸기 시작했고, 결국 요트를 떠나 마리나 휴게실에서 출항 때까지 머물겠다고 했다.


그동안 매일 저녁 와인이나 위스키를 사 와 동료애를 보이던 그는, 선장님의 반복된 무시와 조롱에 결국 등을 돌린 것이다. 일행 모두의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선장님은 “딜리버리하다 보면 한두 명은 중간에 하차한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앞으로 몇 달간 좁은 공간에서 함께 힘든 생활을 해야 하는데, 합심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일이 벌어져 상당히 언짢았다.


오전 10시 40분, 내 다리는 더 심하게 부어오르고 진물이 흐르며 가려움이 계속됐다. 마땅한 조치가 없어 차가운 바닷물에 다리를 담갔는데, 물속에서는 그나마 가려움이 덜해 틈만 나면 바닷물에 다리를 담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김정대 님이 걱정하며 마리나 사무실에 함께 가자고 했다. 사무실에서 다리를 보여주며 먹는 약을 구할 수 있는지 물어보니, 약국은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야 하고, 바르는 간단한 약은 마리나 입구 마트에서 살 수 있다고 했다.


곧바로 마트로 가서 발을 보여주자, 직원이 바르는 약을 건네며 “아주 잘 듣는다”고 했다. 뿌리는 약도 있다고 했지만, 우선 바르는 약만 구입하기로 했다. 가격은 한화로 약 8천 원. 나는 미국 달러로 계산하려 했으나, 직원은 뉴질랜드 달러나 카드만 받는다고 했다. 파이히아 상점에서는 미국 달러가 통용돼 당연히 가능할 줄 알았는데, 이곳은 아니었다. 발 상태는 심각하고 약은 필요했지만, 나에게 뉴질랜드 달러가 없어 난감했다.


▲ 샌드플라이나 모기 물린 자국을 진정시키기 위한 진정용 연고 ‘OUCH Manuka Balm’ 

사실 나는 한국을 출발하기 직전까지 수상스키·웨이크보드 선수단을 인솔해 전라북도 전국체전에 참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급히 짐을 싸 오느라 미국 달러만 챙기고 카드는 준비하지 못했다. 그렇게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다행히 김정대 님이 자신의 카드로 계산해 주어 약을 구입할 수 있었고, 우리는 약을 들고 요트로 돌아왔다.


돌아와 “바르는 약을 샀다”며 보여주자, 선장님이 제일 먼저 약을 달라고 하셨다. 약을 건네자, 옆에 있던 김정대 님이 “바르는 약 말고 뿌리는 약도 있습니다”라고 알려드렸다. 나는 혹시 공금으로 사주시나 했지만, 선장님은 아무 대꾸 없이 약만 바르셨다.


▲ 샌드플라이에 심하게 물린 발. 붓기가 심해 발목과 발등이 퉁퉁 부었고, 피부 색도 변했다. 내 발은 순식간에 ‘코끼리 에디션’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우리 일행은 요트 생활 내내 샌드플라이에 물려 가려움에 시달렸다. 하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대처 방법을 알지 못한 채 계속 물리고 있었다. 특히 나는 유독 심하게 물려 통증이 컸다. 이상하게도 요트 안에서만 심하게 물리고, 휴게실 같은 건물 안에서는 물리지 않았다. 요트에서 생활하는 많은 현지인들은 어떻게 이런 환경에서 지내는지 궁금했지만, 답을 알 수 없었다. 김정대 님은 “아마 현지인들은 면역이 생겨서 안 물리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다 마트 직원의 ‘뿌리는 약’ 이야기를 듣고, 현지인들이 피해를 덜 보는 이유가 그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는 박종보 님이 해양용품점에서 도구를 사 와, 낚시줄에 납을 틸러로 눌러 ‘끄심 발이’를 제작했다.


▲ ‘끄심발이’를 만드는 박종보 님.

‘끄심발이’는 바다낚시, 트롤링, 또는 요트 항해 중 하는 낚시에서 줄이 물 위로 떠오르지 않게 눌러서 원하는 수심으로 가라앉히는 역할을 하는데, 그 작업을 ‘끄심’(눌러 고정함)+‘발이’(봉돌, 무게추)라고 불러서 ‘끄심발이’라고 함. 쉽게 말해 낚싯줄이 잘 가라앉도록 눌러 고정하는 작은 무게추라고 보면 됨


▲ 뉴질랜드 13일차의 밤이 찾아왔다
나는 증상이 심해서 그런지 오후 3시가 되어도 바르는 약의 효과가 없었다. 샌드플라이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빨리 출항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딜러 회사에서 등록번호가 아직 나오지 않았는지 연락이 없었고, 그 때문에 관세청(커스텀)에서 통관 도장을 받지 못해 출항이 불가능했다. 요트는 여전히 마리나에 묶여 있었고, 우리는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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