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19일 (금) 맑음 — 체류 2일차

오전 4시 40분쯤(뉴질랜드 8시 40분), 숙소 앞에 차를 세워두고 바닷가 쪽으로 걸어 나왔다.
도로 옆 작은 카페에 ‘피자’라고 적혀 있는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이른 아침임에도 문을 열고 있어 다행이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도로를 건너 바닷가 쪽으로 나가 주변을 산책했다.
마을이 너무 작아 돌아다닐 만한 곳도, 시간을 보낼 만한 장소도 딱히 없었다. 숙소 입실 시간이 현지 시간 12시라 아직 여유가 있었고 어젯밤엔 어두워 제대로 보지 못한 M1 요트를 다시 보기로 했다.
차로 이동하기엔 짐이 너무 많아 불편했다. 우리는 숙소 2층 안내실에 양해를 구하고 짐을 맡긴 후 오푸아 마리나로 향했다.
마리나에 도착해 M1을 다시 마주하니 첫 대면이라 그런지 45피트의 레이싱 요트가 왠지 더 크고 마스트 역시 더 길어 보였다.

어떤 배든 처음엔 눈에 익지 않아 더 크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 조작에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면 그때야 원래 크기가 보이고 작게 느껴진다.

현재는 계약금만 지급한 상태였기 때문에 점검은 하지 못하고, 외관만 둘러본 뒤 오전 8시(뉴질랜드 12시. 항해하며 위치에 따라 시간 계산이 어려워 이하 전부 한국의 시간으로 표현)에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2층 침대 2개와 싱글 침대 하나가 있는 게스트 하우스의 작은 방이었다.
성인 다섯 명이 짐과 함께 쓰기는 많이 좁은 편이다.

회장님은 “처음에는 마리나 근처 비싼 숙소를 예약했는데, 방이 좁고 비싸 이곳으로 바꿨다”며, “다섯 명이 함께 자야 빨리 친해질 수 있다”는 이상한 말을 강조하셨다.
우리는 맡겨 두었던 짐을 다시 챙겨 방 안에 쌓아두고, 각자 휴식을 취했다. 피로가 많이 쌓였던 터라 오전 11시 50분까지 3시간 정도 잠시 눈을 붙였다.
이후 항해 중 먹을 식량을 준비하기 위해 오클랜드의 한인마트로 향했다. 운전하던 김정대님이 피곤하다고 하여 내가 운전대를 넘겨받고, 마트 문 닫기 전에 도착하려고 서둘러 속력을 냈다.

하지만 초행길인데다 내비게이션도 우리나라처럼 정확하지 않아 마트 근처를 여러 바퀴 돌고 나서야 오후 3시 15분쯤 도착했다. 그러나 이미 영업이 끝났는지 문이 닫혀 있었다. 안에는 불도 켜있고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무리 두드려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안쪽에서 한국어로 “7시(현지시간)까지 영업이니 내일 오라”는 목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영업종료 시간 15분 늦었는데 타지에서 한국 사람들끼리 이정도 편의도 안봐주나 싶어 조금은 서운했으나, 할 수 없이 다른 한인마트를 찾아 핸드폰으로 검색해보니 근처에 ‘한양마트’가 있었다.
전화를 걸어보니 친절하게 8시까지(현지시간) 영업한다고 하여 서둘러 그곳으로 이동했다.
오후 3시 30분, 한양마트에 도착해 장을 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많지 않아 각자 필요한 품목을 맡아 빠르게 장을 보기로 했다. 저녁에 삼겹살을 먹기로 해 고기와 상추를 샀는데, 상추는 소량씩 포장되어 있어 한 봉지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나는 회장님께 하나 더 사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어봤지만,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내려놓으라고 했다.
곧 박종보님이 다가와 상추를 보며 이걸로는 부족하지 않겠느냐고 하자, 회장님은 웃으며 하나 더 사라고 하셨다. 그 상황이 조금 어이없었지만, 그냥 웃고 넘겼다.
그 외에도 가스버너, 부탄가스, 쌀, 캔류, 과자, 음료수 등 여러 품목을 계산대 앞에 모았다. 금액은 100만 원을 조금 넘겼다. 물건을 많이 사니 할인해 달라고 했으나 이미 저렴하게 판매 중이라 어렵다며, 포도 한 상자를 덤으로 주었다.

계산을 마치고 물건을 차량에 실은 뒤, 오후 8시경 다시 파이히아의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저녁으로 삼겹살을 구워 먹은 후,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 다음 편 : ‘M1’ 장비 및 조건에 대한 협상의 진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