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산에서 밤을 지새 우다!
5월의 뜨거운 열기가 6월로 이어져, 어느덧 2025년도 반을 넘어가고 있다. 치열한 경쟁은 마무리되었고, 나 또한 이사 이후 시간에 쫓기듯 한 달을 보내고 말았다.

대학교 때만 하더라도 텐트를 짊어지고 떠나는 낭만 아닌 낭만이 있었고, 나 또한 그렇게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산 위에서 자본 기억은 없었다. 고작해야 마을 인근 커다란 노거수 아래이거나, 해수욕장의 한갓진 솔밭, 아니면 마을 어귀의 모정 정도가 전부였으니.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짐을 싸다 보니 제법 무게가 나간다. 하룻밤을 자야 하니, 와이프 걱정을 덜려면 배터리를 넉넉히 챙겨야 했다. 텐트는 필수이고, 저녁 7시부터 다음 날까지 밤을 보내야 하니 랜턴도 챙겼다. 배가 고플 것을 생각하니 즉석밥과 라면 한 개 정도면 충분할 듯했지만, 참치캔과 햄도 하나 챙겼다. 침낭도 여름철 가볍고 좋은 것으로 하나 넣었다.
다 챙긴 줄 알았으나, 라면과 즉석밥을 끓여줄 버너와 코펠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물도 챙겨야 해서 결국 짐의 무게가 대충 12~13kg이 되었다. 한 번 둘러메니 어깨가 묵직하다.
"아, 이 맛에 백패킹인가!"
스스로를 위로해 보지만, 산은 높고 거리도 만만치 않아 걱정이다.
대충 준비를 마치고 집에서 3시가 넘어서 출발했다. 최초의 계획은 석남터널에 5시쯤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지에 가까운 계절이라 낮이 길어 7시면 충분히 오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그럴듯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계획은 번번이 무너진다.
출발이 늦어져 6시가 다 되어 석남터널에 도착했고, 백패킹을 할 것인가, 차량에서 차박을 하고 10시경 야간 산행을 할 것인가, 아니면 아예 새벽에 올라갈 것인가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사람 마음이 이리도 간사한가 보다. 나이가 들수록 편하고 쉬운 것을 찾게 되는 것이, 아마도 백패킹 배낭의 무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듯하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등산을 시작했다.
이로써 나의 ‘3만 명 순위 안에 들기 위한 영남알프스 인증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당초 5월이면 끝낼 일이었지만, 연초에 눈이 온다는 핑계로 한 번을 건너뛰자 이런 무리한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4월은 전국적인 산불로 인해 등산로가 통제되었고, 5월과 6월은 그야말로 경쟁 아닌 선착순 산행이 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3만 명 중 남은 인원은 5천 명도 채 되지 않았고, 6월 3일 선거로 인한 임시 공휴일과 6일부터 이어지는 연휴로 인해 초반에 5천 명은 마감될 듯했다.

산을 오르다 보니 내려오는 산객들이 “부럽다”고 한마디씩 해주니 기분이 좋아진다. 아, 이 간사한 마음이여! 그러나 그 부러움도 첫 번째 끝없는 데크 계단 앞에서는 좌절할 뻔했다.
계단이 끝이 없어 허벅지에 경련이 일고, 내심 걱정이 많았다. 이러다 다리에 쥐라도 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고, 어디에 텐트를 칠지 고민도 들었다.

중봉에서 본 가지산 능선은 좌로부터 쌀바위와 가지산 정상, 그리고 저 멀리 백운산 방향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니 시원스럽기 그지없었다. 정상 아래 헬기장에 몇 개의 텐트도 보여 오늘은 안심하고 잘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지산 정상을 두고 옆으로 난 길 아닌 길을 따라 헬기장에 도착해서 짐을 내려놓으니, 그제야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능선을 넘는 바람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서둘러 텐트를 치고 정상에 올라 5월 인증을 마쳤다. 정상 인증을 마친 사람들 중에는 다시 석남터널로 내려가는 사람도 있고, 헬기장을 지나 운문산으로 향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 달에 2개까지만 인증할 수 있으니, 월말을 이용해 5월 2개, 6월 2개 총 4봉우리를 인증하는 전략이 가능한 것이다.
텐트 안에서 라면을 먹고 누우니 잠이 올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옆 텐트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코골이에 잠을 설쳤고, 설상가상으로 산 정상의 5월 31일 밤은 꽤 추웠다.
경량 다운을 입고 침낭에 누웠지만 추워서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뒤척이다 보니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얼른 밖으로 나가 보니 시간은 자정 무렵, 이미 6월 1일. 야간산행으로 정상에 도착한 사람들의 랜턴 불빛이 번쩍인다.

잠도 안 오고 조바심도 나서 얼른 신발을 신고 정상을 향했다. 달빛은 거의 없었지만, 밤하늘의 별이 총총해 걷기에 무리는 없었다. 정상에는 5~6팀이 인증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혼자 온 다른 분께 부탁해 인증을 마쳤다.
순번을 보니 24,962번째였다.
그렇게 가지산 정상에 한참 앉아 있자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멀리 운문산에도 불빛이 움직이고, 간월산 방향에서도 불빛이 요란하다.
아, 사람의 마음은 다 똑같은가 보다. 3만 명 안에 안정적으로 들기 위한 각자의 계획이 저 산, 이 산에서 불빛으로 나타나고 있으니 말이다.
3만 명 안에 들면 기념은화가 무료로 주어지지만, 이후 순번은 구매해야 한다. 물론 완등하지 못한 사람은 구매 자체가 불가능하다.

인증을 마치고 텐트로 내려와 추운 밤을 보내고, 새벽녘 사람들 소리에 다시 눈을 떴다. 정상을 향한 부지런한 발걸음이 보였고, 저 멀리 울산 방향에서 붉은 아침 해가 떠오르던 시간은 5시 10분이었다.
잠이 더 이상 올 것 같지 않아 텐트를 정리하고 정상을 한 번 더 밟고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은 한결 가볍고, 이른 시간 오르는 사람들을 보니 괜히 뿌듯했다.
시간 여유가 있었다면 석남사 솔밭을 거닐며 경내도 살펴보고, 대웅전 뒤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도의국사 승탑도 가보면 좋았겠지만, 너무 피곤해 곧장 집으로 향했다.
2025년 6월부로 영남알프스 9봉(현재는 문복산과 재약산이 제외되어 7봉)을 5년 만에 완봉했다.
4년을 함께한 직장 동료는 휴무일이 맞지 않아 이번 영축산과 가지산은 따로 올랐고, 그 친구도 완등에 성공했다.
조바심과 개인적인 이사, 휴가 계획 때문에 서둘렀지만, 6월 21일 현재까지 3만 명은 채우지 못했고, 현재까지 28,471명이다.
내년에도 다시 도전해야겠지만, 또 어떤 방식으로 인증이 바뀔지는 모르겠다.
덕분에 생애 처음 가지산 정상에서 하룻밤을 보냈고, 춥고 지친 밤이었지만 산으로 오르는 아련한 불빛, 초롱초롱한 별, 그리고 저 멀리 언양과 울산의 야경은 아직도 꿈만 같다.
기회가 된다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꼭 한 번 실천해보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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