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기)태평양을 넘은 50일의 기록-10

- 엔진수리, 엔진 과열과 냉각수 순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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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을 넘은 50일의 기록-10

요트 항해사 - 최 성 진(崔成鎭)

엔진수리, 엔진 과열과 냉각수 순환 문제
( 뉴질랜드의 무지개는 어딘가 더 자유롭고 낯설게 다가왔다)



■ 10월 26일 (금요일) 맑음 — 체류 9일차 / 요트 3일차

요트 3일차의 분주한 하루… 엔진 점검·CIQ 지연·돔 작살 사냥까지

오전 2시 30분(현지 시간 6시 30분), 샌드 플라이의 공격으로 가려움에 뒤척이며 잠에서 깼다. 그나마 모기향을 피워둔 덕분인지 전날보다는 조금 나았다. 일어나는 김에 출항 준비를 위해 짐 정리를 시작했다.
3시 30분부터는 봄비가 조용히 내리기 시작했고, 한 시간가량 흐른 뒤에야 멎었다. 비가 그친 뒤엔 공기가 차가웠고 해는 뜨거웠다. 멀리 무지개도 보였다. 한국의 무지개와 크게 다를 건 없지만, 뉴질랜드의 무지개는 어딘가 더 자유롭고 낯설게 다가왔다. 낯선 땅에서 맞이한 익숙한 풍경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작은 여행이었다.


요트 위에서 짐을 정리하는 크루들. 출항 준비의 설렘보다는 아침잠에서 일어나 뭔가 빠진 모습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엔진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시동을 걸었다. 엔진과열이 냉각수 순환 문제가 아닌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ON/OFF 버튼이 바뀐 상태였지만 일단 작동시켜 냉각수 배출 상태를 점검해보니 냉각수의 배출량이 정상보다 현저히 적었다. 딜러인 그램씨에게 전화를 걸어 스타트 모터와 엔진 이상으로 냉각수 배출량이 적게 나오고 있으니 크레이그 씨에게 수리를 요청해 줄 것을 부탁했다.


▲ 비가 그친 마리나의 하늘에 떠오른 무지개. 선착장을 감싸는 반가운 색채

오전 8시, 크레이그 씨가 보낸 엔진 수리 기술자 두 분이 요트에 도착했다. 이분들은 요트에 오르자마자 신발을 벗고 양말만 신은 채 캐빈 안으로 들어왔다. 엔진과 스타터 모터, 세부 배선 상태까지 세심히 점검한 뒤, 엔진 자체의 결함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원인은 전기 배선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전기 기술자를 부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수리 대상이 아니므로 자신들의 출장비는 받지 않겠다며 정중히 인사를 하고 떠났다.


솔직히 뜻밖이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출장을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정도 수고비를 요구했을 텐데, 이분들은 책임과 영역을 정확히 구분하며 매너 있는 태도를 보여줬다. 잠시 후, 두 기술자는 어제 입항한 대형 영국 요트로 향했다. 70피트 이상은 되어 보이는 요트였는데 그쪽에도 엔진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오전 10시가 되어 M1의 전기 배선을 직접 설계하고 설치했던 전기 기술자가 도착했다. 복잡하게 얽힌 배선들을 하나하나 점검해봤지만, 원인을 단번에 찾기엔 구조가 너무 복잡했다. 결국 오전 11시쯤 다음 날 6시에 전기 배선 설계도를 가지고 재방문하겠다며 돌아갔다.


▲CIQ가 늦어지며 답답한 내 마음과 달리 마리나의 풍경은 그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기술자가 떠난 뒤 우리는 다시 관세청(Customs) 사무실로 향했다. 하루라도 빨리 CIQ 절차를 마무리하고 출항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출항은 요원했다. 통역을 맡은 분께서 딜러인 그렘 씨와 통화를 하신 뒤 전해준 말은 이랬다. 딜러 회사는 세관 브로커 자격증(수출 통관 자격증)은 보유하고 있지만, 국가에 정식 등록을 하지 않아 코드 번호가 없다는 것이다. 그 코드 번호가 있어야 세관에서 통관 도장을 받을 수 있는데, 지금은 그 번호가 발급 중이라 도장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였다. 세관 직원은 등록번호가 나오면 연락하라며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서류가 웰링턴까지 갔다 와야 하므로 며칠 더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요트로 돌아와 계류장 데크를 거닐며 시간을 보냈다. 오푸아 마리나는 산과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차 없이 어딜 나간다는 게 불가능한 곳이다. 



고장 난 요트에 머물며 멀뚱히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김정대님께서 해양용품점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마리나 중간쯤에 있는 해양용품점으로 향했다.
마리나에는 두 곳의 용품점이 있는데 중간에 있는 용품점 가격이 합리적이라 주로 이곳을 이용했다. 고무보트 가격이 한화로 약 100만 원 정도였는데, 마리나 끝에 있는 용품점보다 많이 저렴했다.


▲ 박종보님이 손질해 라이프라인에 말린 생선. 항해 중 필요한 소중한 바다선물

매장을 둘러보다 김정대님은 고무줄을 손에 끼워 사용하는 작은 작살 하나를 구입했다. 계류장 주변에 무리지어 헤엄치는 돔과 작은 물고기들을 보며 손이 근질근질거렸는데, 마침내 도구가 생긴 것이다.
요트로 돌아온 우리는 작살 사냥을 시작했다. 처음엔 헛방이었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큼직한 돔 한 마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 선장님은 다른 요트에서 뜰채를 빌려왔고, 단 한 번의 뜰채질로 작은 고기들을 열 마리 넘게 잡아 올리셨다.


그날 저녁, 우리는 신선한 회를 떠서 담백한 단백질을 보충했고, 남은 물고기는 박종보님이 손질해 라이프라인에 걸어 말렸다. 말린 생선은 항해 중 귀한 반찬이 될 터였다.



< 다음 편 : 마리나에서는 물고기를 잡으면 안 된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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